2016년 3월 16일 수요일

[그 남자 그 여자] 그녀도 나처럼 아플까요? & 나만 아픈게 아니었네요.

그녀도 나처럼 아플까요?
난 그때 죽을 것처럼 아팠는데 지금은 이렇게 살아 있네요.
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에요.
난 주사기 하나를 팔뚝에 꽂은 채 움직이는 사람처럼
움직일 때마다 아프고, 그 주사기를 볼 때마다 생각나요.
난 이렇게 약속이나 한 듯
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가는 게 화가 나요.
난 하나도 그대로가 아닌데,
모든 게 물 흐르듯 약속한 듯이 흘러가는 게 이상해요.
나를 제외하고 모두들 짜고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잖아요. 꼭.
그녀도 나처럼 아플까요?
어렸을 때 끓는 물주전자를 엎지르는 바람에 팔꿈치를 데었어요.
오늘처럼 추운 날이었어요. 난 밤새도록 화끈거리는 팔 때문에 뒤척였는데,
"흉터만 남지 않게 해주세요." 하고 기도했던 귓가의 엄마 목소리.
그게 아직도 기억나요.
"흉터만 남지 않게, 제발 제발."
내 사랑도 그러길 바랬는데 흉터만 남았네요.
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나는 두 개나 가지고 있네요.


나만 아픈게 아니었네요.
깊은밤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.
알코올 기운 때문에 흠뻑 젖어 있는 목소리.
휘청휘청, 안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걸음걸이.
예전처럼 "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?" 하고 말하려다 참았어요.
이제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요.
그 대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"왜?" 였어요.
왜라니요?
기다렸던 전화였는데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"왜?" 라니요.
우리 헤어져도 서로 단단해지기로 했거든요.
씩씩해져서 누구보다도 잘 살기로 약속했거든요.
그 사람은 "그냥" 이라는 말만 여러번 되풀이 하고는 전화를 끊었어요.
나만 아픈 게 아니었네요.
그 사람도 그렇게, 많이 아팠나 보네요.
뒤돌아보면 얼마 지나온 것도 아닌데,
뒤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,
등을 지고 서서 각자 아파하는 두 바보.
그래서 사람들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
혼자이기를 처절하게 거부하는 건가 봐요.

하지만 이미 바보라서 그게 잘 안 되는 건가 봐요.

출처


그 남자 그 여자 3
작가: FM음악도시
출판: 랜던하우스 코리아
발매: 2006.04.20


접기

댓글 없음:

댓글 쓰기